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역사 (문단 편집) === 업계의 구조 정립 === 기존의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도 방송국에 작품을 납품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제작비를 건질 수 없었기에, 각종 캐릭터 상품 전개가 되는 작품과, 아동문학을 원작으로 하거나, 일본색을 지운 무국적성 작품으로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둔 작품을 만들었다. [[닛폰 애니메이션]]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와 [[타츠노코 프로덕션]]의 무국적성 작품은 그 예다. 1960년대에 이미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어 방영된 《[[철완 아톰]]》이나, 미국 방영을 위해 컬러로 제작한 《[[정글대제]]》, "Speed Racer"라는 타이틀로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마하 GoGoGo]]》라는 선배격 작품이 있었는데, 더욱 더 해외수출에 힘을 실어서 《[[타이거 마스크(만화)|타이거 마스크]]》,《[[과학닌자대 갓챠맨]]》, 《[[캔디캔디]]》, 《[[얏타맨]]》, 《[[공룡대전쟁 아이젠보그]]》,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 999(TVA)|은하철도 999]]》, 《[[보물섬(애니메이션)|보물섬]]》, 《[[캡틴 퓨쳐]]》, 《[[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수많은 작품들이 해외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얻게 된다. 토에이 동화도 무시 프로도 창립 초기에는 전 직원이 정직원 월급제였지만, 딱히 기술이 필요없는 채색같은 작업은 비정규직 임시직 여성 사원을 채용했다. 이윽고 1973년에 무시 프로덕션이 인건비를 감당 못하고 도산하고, 토에이 동화도 임금인상으로 촉발된 노사분규로 회사가 한 번 망할 정도로 휘청거리자, 이후 동화(動畵)와 원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는 1장 당 얼마씩 받는 성과급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다른 작업들도 인건비를 줄이려고 정규직은 뽑지 않고 하청과 그 하청의 하청업체로 돌리면서, 한 때는 일본 항공사 조종사급의 월급을 받으면서 잘 나가던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은 이제는 거의 5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업계 초창기의 애니메이터의 직업윤리의 문제도 있었는데,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딸리는 숙련된 애니메이터의 부족 현상으로 몸값은 치솟았는데, 토에이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면서 정직원으로 일하고는 퇴근 후에는 무시 프로라든가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의 일감을 부업으로 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토에이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정직원으로 고용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배신 행위로 보았다. ※ 2017년 기준으로 동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 평균 연수입이 111만 엔이다. 2015년 일본 [[문화청]] 자료에 의하면 [[애니메이터]]의 70%가 프리랜서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4대 보험이 적용이 안 되는 [[프리터]] 아르바이터나 마찬가지다. 애니메이터중 월수입 18만 엔 이하가 37%에 달한다. 동화 한 장 그리는데 150엔으로 15년 전과 똑같다. 그러면서 소비세는 10%로 올라서 개인 부담은 더 커진 것이 지금의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실이다. 그리고 더 인건비가 싼 곳으로 눈을 돌려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일본 애니메이션 단순한 [[하청]] 작업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 전에 《[[황금박쥐(애니메이션)|황금박쥐]]》(67)와 《[[요괴인간 벰]]》(68)은 일본인 애니메이터 직원이 직접 한국에 파견와서 기술을 전수해주면서 만든 합작(겸 하청)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런 식의 기술전수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한국 방송사들이 만화영화 제작에 돈이 많이든다며 애니메이션 제작을 포기해버리거나 미뤘기 때문이었다. 덕택에 당대에도 많은 항의를 받았음에도 결과적으로 한국 최초 TV만화영화가 나올때까지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어린이 시간대를 미국과 일본만화영화가 차지해버린건 덤. 무시 프로의 도산과 토에이의 인력 정리를 기점으로, 유출된 무시 프로 출신 인력과 토에이 출신 인력이 모여든 곳이 당시 진취적인 성향의 명물 사장 후지오카 유타가가 [[CEO]]였던 [[도쿄 무비]](→ 도쿄 무비 신사 → 현 TMS)였고, 적은 동화(動畵) 장 수에서 연출력으로 승부하는 무시 프로와 캐릭터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토에이 출신이 서로의 장점을 융합해서 만든 작품이 《[[감바의 모험]]》(1976)이었다.[* 2014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팀이 해체되면서 《[[너의 이름은.]]》, 《[[이 세상의 한구석에(애니메이션)|이 세계의 한구석에]]》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급상승한 현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연출은 토에이와 무시 프로 출신 인력이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연출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부터 타츠노코 프로에서도 인력이 유출되어, 무시 프로 출신의 [[선라이즈]](1972), [[매드하우스]](1972), 토에이 출신 [[톱 크래프트]] - 지브리의 전신 회사(1972), 타츠노코 프로 출신 [[아시 프로덕션]](1975), [[스튜디오 피에로]](1979) 등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설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